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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식수술.. | 16/03/02 14:27 | 추천 70 | 조회 5098

백범 김구의 뒤를 잇는 민족지도자 +210 [11]

오늘의유머 원문링크 https://m.todayhumor.co.kr/view.php?table=bestofbest&no=2342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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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누리당이 두려워했던 단 한명의 정치인,

노무현 대통령의 정신적 지주였던 단 한명의 정치인,

진정한 의미의 "민족주의", 고로 "민족지도자" 라고 말할 수 있는

김대중 전 대통령 입니다.


진정한 국부 김구 선생님 께서는 남한 만의 선거를 하자고 주장하는 이승만 전 대통령의 의견과 달리, 남북한 총선거를 주장하셨습니다.

편가르기, 이념 논쟁, 진영 논리 보다는 우리 민족 우리 역사를 사랑하셨던 겁니다.

이는 우리가 잘 아는 국민의 정부의 햇볕정책 과도 아주 흡사합니다.



햇볕정책은 전 세계가 인정하는 훌륭한 정책입니다.

그러나 전 세계가 인정함에도 불구하고 정작 우리나라 국민들은

김대중이 쌀 퍼줘서 북한이 핵 만들었다고,

오해를 하고 계십니다.



북한이 핵에 관심을 가지고 투자하기 시작한 건 이미 김일성이 집권하고 거의 직후 입니다.


근거 1 : http://www.newstown.co.kr/news/articleView.html?idxno=140333
- ("북한집단은 체제유지와 공산독제정권을 유지하기 위해 북한은 50년대부터 핵에 관심을 기울이기 시작하였고 1985년부터 원자로를 자체기술로 건설하여 1986년부터 가동하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북한의 핵의혹이 본격적으로 불거진 것은 1993년 북한이 IAEA에서 탈퇴하면서부터이다.")

-> 국제사회에서 북한의 핵 의혹이 불거진 시점만 봐도 김대중 대통령 집권 시점보다 이전입니다.



근거 2: http://weekly.chosun.com/client/news/viw.asp?ctcd=C01&nNewsNumb=002247100008
- ("김일성은 1965년 10월 노동당 집회에서 “불원간 핵을 보유할 수 있다”고 말했으며 1967년 군 지휘관 회의에서 “우리도 원자탄을 생산하게 됐다. 미국이 원자탄을 사용하면 우리도 사용할 수 있다”고 호언했다는 기록도 있다. 1970년 당시 북한 부총리였던 박성철은 북한을 방문한 일본 사회과학 대표단에게 “1972년까지 원폭 제조에 노력하겠다”고 말하기도 했다.")

-> 북한 영변의 핵 시설은 이미 1980 년에 존재가 확인이 된 사실 입니다.


또 하나, 전두환씨가 대통령이 되기 위해 민주 진영의 정치인들을 다 쳐내는 과정에서

"광주 민주화 운동은 폭동이다! -> 알고 보니 김대중이 북한의 간첩이더라! -> 광주는 북한 간첩 김대중이 지령 내려서 일어난 폭동이자 반란이다!"

라고 주장하면서 아무 죄도 없는 김대중 선생님을 죽일듯이 고문하고, 거짓 자백을 하도록 강요하며 내란음모죄를 덮어 씌워 사형을 선고했을 때 에도

김대중 선생님을 지켜주었던 건 우리 국민들이 아니라 국제 사회 였습니다.

(김대중 내란 음모 사건 관련 자료 : https://ko.wikipedia.org/wiki/%EA%B9%80%EB%8C%80%EC%A4%91_%EB%82%B4%EB%9E%80_%EC%9D%8C%EB%AA%A8_%EC%82%AC%EA%B1%B4 )

전 세계 많은 국가가 DJ 는 무고하다며 구명 운동을 펼친 것입니다.

전두환 씨는 이 압박을 못 이겨 "사형은 그냥 됐고, 한국에서 추방할테니 다신 오지마" 라는 식으로 DJ를 외국으로 보내버립니다.



김대중 선생님은 정작 조국인 대한민국에서만 평가절하 되고 있습니다.

국제적으로는 정말 유명한 민주 투사, 사상가 입니다.

2002년 전까지 미국 유학을 다녀왔던 지인의 말로는

박정희는 몰라도 DJ 는 다 알더라고 하더군요.

DJ 는 위인전을 써도 될 만한, 우리 국민이 전 세계에 자랑할 만 한 지도자 입니다.




김구 선생님의 뒤를 잇는 민족지도자는 김대중 선생님이라고 생각합니다.

두분은 모두 화합을 중시하였으며,

국민을 사랑하는 마음, 그리고 민주주의에 대한 사명감과 뚜렷한 신념이 있었습니다.
(또, 이 두분이 연설을 하시면 수십만명이 정말 잠깐 사이에 모였고, 그 연설을 들어보면 별다른 어려운 단어도 없이 쉬운 말과 뼈 있는 농담, 하지만 듣는 이들을 굉장히 몰입하게끔 만들었고 엄청난 파급력이 있었다는 것도 두 분의 공통점입니다.)


이 두분을 정치인 이 아닌 지도자 라고 이름 붙이는 이유는

국민을 하나로 모으는데 굉장한 힘이 있으시기 때문입니다.

김구 선생님을 중심으로 국민들이 모여 독립 운동을 펼쳤던 것 처럼

김대중 선생님이 대통령일 때에는

우리 국민이 모두 힘을 모아서 금모으기 운동도 하고 월드컵 응원 등

뭔가 국민이 다 같이 힘을 합쳐 뭔가 이뤄내는 분위기로 가득했습니다.


얼마전 더민주에 입당한 김홍걸 씨의 말처럼,

더 이상 김대중 선생님의 이름을 빌어 표를 얻으려는 만행 따위는 저질러서는 안됩니다.

그 분을 욕보이는 짓임을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언제나와 같이 민주 세력이 분열되어 버린 지금,

그 분열을 일으킨 세력들이

김대중 선생님의 이름을 팔며 표를 구걸 하고 있는 지금 이 시점에서



김대중 선생님이 가장 중요하게 여겼던 것은 무엇인지 한 번 되짚어 봐야 하지 않나 싶습니다.

김대중은 모든 민주 진영의 인물입니다.

갈라서고 편을 가른다면 그것은 이미 DJ 정신이 아닙니다.



김대중 선생님은 과거 대통령 후보 자리를 놓고 YS 와 갈라서면서 단일화에 실패한 역사도 있으시지만

훗날 대통령이 되시기까지 화합과 통합을 중요시하셨습니다.

갈라서서 보니까 정말 말도 안되는 사람이 당선되는 걸 경험하셨기 때문이에요.

기득권은 절대 갈라지지 않아요. 그들이 똘똘 뭉쳐있기 때문에 민주세력은 분열되어선 안된다는 걸 통감하신 겁니다.



김대중 대통령님이 생전 마지막 연설에서 남기신 "행동하는 양심" 이 무엇인지 한 번 되짚어 봐야겠습니다.




-택시에서 김대중 대통령이 쌀을 퍼줘서 핵을 만들었다고 주장하시는 한 기사님의 말씀과
전라도 여행 중 국민의 당과 더민주에 대한 이야기를 하시던 또 다른 기사님의 말씀을 듣고 떠오른 생각들



-추가 1 : 제 마음 속 최고의 연설인 김대중 대통령 1969 년 효창구장 삼선개헌 반대 연설







-추가 2 : 노무현 전 대통령이 말하는 김대중 전 대통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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