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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이그.. | 20/01/24 22:53 | 추천 21 | 조회 1128

의사로 살면서 경험한 썰 #22 +497 [12]

보배드림 원문링크 https://m.bobaedream.co.kr/board/bbs_view/best/2790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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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 주위 좋은분들과 좋은시간 가지시길 바랍니다.


저도 글을 마치고 바로 고향으로 내려가보려 합니다


설 잘보내고 오겠습니다. 새해복많이받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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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섬에서 처음 경험한 태풍



태풍. 섬사람들에겐 겪고싶지 않은 자연재해이다. 파도가 높아지는 순간 섬은 고립된다. 예전처럼 물이나 전기가 끊어질 걱정은 하지 않지만 마트의 식음료는 고립될수록 줄어들고 태풍으로 장기간 배가 뜨지 않으면 전쟁통처럼 마트가 텅 빈다. 그런 이유로 섬사람들은 냉장고나 창고에 일주일정도의 음식재료등을 구비해두곤 한다. 

 

나는 그 사실을 몰랐고 이후에 진료실에 온 할머니를 통해 알게 되었다. 물론 섬을 나갈 때마다 파스타부터 몇몇 재료등을 사오긴 했지만 가져오는데 한계가 있어 일주일이면 모두 다 먹곤했다. 비상식량이라곤 고추참치 한박스와 3분카레박스가 전부였다. 그러나 그것들은 웬만해선 꺼내놓고 싶지 않았다.


8월말. 예년과 다르게 연속적으로 태풍이 오고 있었다. 태풍이 접근하면 먼 바다로부터 파도가 높아져 연안까지 이어졌다. 그렇기에 태풍이 정확히 관통하지 않는다 하여도 배는 뜨지 않았다. 그러한 태풍이 두세개 연속으로 오면 최소 2~3주정도는 섬에서 고립되었다. 그러한 상황이 실제로 내게도 찾아왔다. 


다음날 섬을 나가기 위해 짐을 열심히 꾸리며 기상상황을 찾아봤는데... 예상되는 파고와 바람의 세기로 보아 취소될 가능성이 컸다. 더군다나 3일 뒤 태풍이 상륙할 예정이었다. 

창문 앞 나뭇가지가 심하게 흔들렸다. 그 나뭇가지가 흔들리는 날에는 배가 뜨지 않았다. 앞으로 바람의 세기가 세질것을 생각하면 내일 나가지 못하는건 확정적이었다.


역시나 새벽부터 배를 기다리던 많은 사람들이 집으로 돌아갔다. 그날 배는 취소되었고 나는 예정에 없던 진료를 시작했다. 

또한 이날은 ㅈㅅㅇ이 섬에 들어온지 꼭 일주일 되는 날이었다. 처음엔 사랑하는 사람과 섬에서 지낼생각에 들떴겠지만 점차 지겨워짐과 동시에 약간은 버거워 보이기도 했다. 육지에서만 살던 사람에게 섬에서 한달만 살아보라고 하면 아마 많은 수가 포기하고 돌아갈지도 모른다. 


ㅈㅅㅇ도 사면초가였다. 일주일이나 집을 나간 딸을 걱정하는 어머니. 차마 섬에 들어왔단 말은 못하고 삥 둘러 얘기했지만 당장 오라하여도 갈수 없는 본인의 처지에 대해서 어떻게 설명해야할지 난감해보였다. 섬은 도망칠수가 없다. 사랑하는 사람을 놓치고 싶지 않다면 섬에 들어가야 하는 이유이다. (장난이다) 그녀는 구직으로 바쁘다며 애써 둘러대고 끊었다. 


문제는 지금부터였다. 태풍이 연달아 올 예정이었고 그걸 감안했을때 최소 2주정도 밖애 나가지 못할 가능성이 컸다. 그녀도 일주일 기간을 정해놓고 들어온터라 육지에서 구입 해야할것들이 있었고 부모님에게 계속 거짓말 하는것도 걸리는 눈치였다. 나도 이런 상황은 처음이라 적잖이 당황했다. 


또 하나의 문제가 있었다. 태풍이 오면 섬은 무방비 상태라 바람 파도 등이 막 밀어붙였다. 연안의 집들은 태풍이 하나씩 올때마다 하나씩 무너졌다. 그로 인해 건물 밖으로 나가는것은 위험하므로 얼마간의 음식은 필요할것 같았다. 마트를 찾았다. 


아니웬걸.... 그 흔한 야채하나 남질 않았고 남아있는 음식이라곤 떡볶이 레또르트 과자 음료수가 전부였다. 당황했다. 인생 한번 겪을까 말까한 상황에 동공지진이 왔다. 

(식당이 없냐고 생각할수도 있는데 섬에 몇명의 식당이 있지만 자연산 생선을 이용한 요리집들이라 가격이 비싸고 매일 그것을 먹는다는건 사실상 불가능하다 생각하면 된다)


그녀에게 너와 같이 있으면 이슬만 있어도 살 수 있어라고 말했었다. 하지만 인생은 현실이다. 이슬만 먹어도 될 때에는 배가 정말 불렀다보다. 정작 배가 고파지자 음식이 필요했다. 내 방에는 카레와 참치뿐이었고 일단은 그것을 먹는다 하여도 다른 먹을거리가 필요했다. 어쨌든 한 이틀을 카레와 참치로 버텼다.


여전히 짙은 안개와 파도로 배는 뜨지 못했고 그녀와 나는 인도사람이 된 것 같았다. 매끼니를 카레와 참치만 먹다보니 몸에서 인도사람 냄새가 났다. 사놓을거면 카레도 여러종류를 사놓지 가장 맛없는 3분 기본카레만 사놓은탓에 한 며칠 먹으니 물려서 먹지 못했다.  인도에는 300여가지가 넘는 카레가 있다고 한다. 왜 그런지 알 것 같았다.






2. 할머니


그녀에게 몹쓸짓을 하는것 같아 다른 방안을 생각해봤다. 그러던 차에 할머니가 생각났다.

나를 좋아해주시던 할머니. 그 할머니라면 왠지 내게 도움을 주실것 같았다. 할머니는 마침 진료실에서 멀지 않은곳에 살고 계셨다. 고추밭과 배추밭에서 맘껏 따서 먹으라던 그런분이었다.


할머니를 찾아가서 자초지종을 설명드리니 막 웃으셨다. 육지에서 갓 들어온 청년이 태풍때문에 고생하는 모습을 보니 귀여우셨나보다. 할머니 냉동실에 항상 냉동삼겹살이 가득한 이유를 이제야 알게 되었다. 그들이 몇십년간 살면서 체득한 지혜였다.


저녁을 같이 먹자며 바닥에 신문지를 펼치셨다. 여자친구가 있다고 하니 데려오라고 하셨다.

신문지 위에는 내가 좋아하는 두릅나물을 포함해 여러 나물이 놓였고 중앙에는 고기불판이 놓였다. 그녀도 오랜만에 먹는 고기에 설레보였다. 할머니와 이것저것 얘기를 하며 밥을 먹기 시작했다. 할머니는 계절별로 섬에서 어떻게 대처해야하는지 알려주셨다. 봄과 가을엔 일교차로 안개가 심해 배가 못뜨는날이 많으니 음식을 제때 사놓는게 중요하고 태풍철엔 밖을 나가지 않아야 한다고 알려주셨다. 


노부부는 이 섬에서 산지 60년이 넘었다고 했다. 할아버지의 고향인 이 섬으로 다시 들어온 후 한번도 나가지 않고 사셨다고... 그러니 섬에서 사는 지혜에 관해선 귀담아 듣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여러 이야기들에 감사드리며 밥도 맛있게 먹었다.

그녀는 항상 복스럽게 밥을 먹었다. 기본적으로 몸에 근육이 많아서인지 그렇게 먹어도 살이 잘 찌지 않았다. 

그녀는 전라도 출신이었다. 전라도 사람들을 만나자 그녀의 진가가 발휘되기 시작했다. 내 앞에선 단 한번도 사투리를 쓰지 않았는데 그렇게 구수한 된장찌개같은 사투리를 쓸 줄은 몰랐다. 할머니는 여자 제대로 만났다며 내 등을 탁 치셨다.


할머니가 말했다.


"결혼할꺼여 선생?" "내 조카 소개시켜줘야는디 이런 처자를 데꼬와부러써"

"....................."


발그레 발그레. 그녀와 내 얼굴이 발그레


결혼. 전혀 생각해보지 않은건 아니었지만 서로의 사이가 어색해질까봐 딱히 꺼내지 않았던 단어였다. 

그녀의 나이도 어느정도 찼고 나도 30에 들어선 이상 아예 생각하지 않을수도 없었다. 약간은 무거워진 가슴과 배를 들어 올리고 할머니집을 나왔다. 오랜만에 포식을 시켜주신 할머니에게 감사드렸다. 언제든 밥 먹고 싶으면 오라는 말에 여자친구의 눈가에 눈물이 찼다. 돌아가신 할머니 같다며 내내 그 할머니 집에서 설거지 하는 모습이 참 보기 좋았는데..


우리는 매일 밤마다 스트레칭을 했고 쪼개질것 같던 내 몸도 점차 유연해지기 시작했다. 태풍때문에 나가지 못했지만 그래도 그녀와 한방에 있는게 좋았다. 그녀와 발 맡대던 순간. 따뜻한 그녀의 발 온기가 내게 옮겨지던 순간. 지금도 그립고 사랑스럽게 느껴지는 순간이다. 그녀의 멈춰버린 진주빛 구두는 처음 그대로 그자리에 놓여 있었고 앞으로도 내 삼선 슬리퍼만 신었으면 좋겠다 생각했다. 


결혼. 그것에 대해 생각하지 않을수 없었다.




3. 매순간 



가끔 생각했다. 내가 인턴시절 그 간호사를 보지 못했다면... 악마같은 수간호사가 그녀를 괴롭히지 않았다면... 내가 그녀를 위로해 주러 갔을까? 


만약 옆방 인턴으로 들어갔다면 다른 간호사와 잘 됐을까? 그녀는 더 예뻤을까? 성격이 좋았을까?


그것도 아니라면 인턴내내 울다가 다시 연락온 ㅂㅎㅇ와 만나 재결합을 했을까? 


악몽의 순간이라 생각했던 순간이 지나고보면 오히려 찬스였던적이 있다. 그녀가 상처를 받고 울고 있었지만 그 순간 때문에 나와 만날수 있었다. 


내가 더 좋은 사람을 만나게 됐더라도 나는 ㅈㅅㅇ을 만나게 된 것이 가장 최선이라 믿었으며 그녀를 만나게끔 도와준 많은 순간들에 감사했다. 앞으로 그녀와 같이 경험할 많은 순간들에 있어 나타날 기회들 또한 항상 내게 좋은 쪽으로 발휘되길 바라며 매순간 최선을 다해야겠단 생각도 했다.


그녀를 만난것 자체가 내겐 행운이었고 매사에 최선을 다하고 긍정적으로 생각하게 된 계기였다. 고마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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