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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espaKar.. | 24/10/16 22:10 | 추천 29 | 조회 134

남편이 6만엔짜리 로봇 하반신을 샀다.jpg +138 [22]

루리웹 원문링크 https://m.ruliweb.com/best/board/300143/read/680495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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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만엔의 사용법 - 남편의 취미를 '어떻게 용서할 수 있나요?' 라는 질문을 듣고 생각한 것




회사 연수로 스터디 그룹에 참가하게 되었다.

강좌의 목적은 자기 자신을 매력적으로 프레젠테이션 할 수 있게 하는 것.
우선은 자신의 흥미분야나 전문분야, 경험 중에서 다른 사람이 재미있게 여길 수 있는 게 어떤 게 있는지 알아보자는 취지로
그룹 워크를 진행하게 되었다.

내 경력은 꽤 굴곡이 많은데 사회인이 된 후에 영국으로 유학을 가고
귀국 후에는 일하면서 대학원에 다녔고, 최근에는 박사 학위를 받은 지 얼마 되지 않았다.

전문은 외국어 교육이고, 연구 주제는 귀국 자녀. 그리고 취미는 음악, 열기구부에 들어가 활동한 경험도 있다.
어느 것이나 나름대로 재미있는 이야기라고 생각하고 있지만, 무엇이 다른 사람의 흥미를 끌지는 확실히 잘 알 수 없었다.

그래서 여러 가지 화제를 끌어내며 다른 사람들의 반응을 살펴봤는데,
의외로 가장 잘 먹힌 소재가 무심코 내뱉은 '남편이 로봇 오타쿠다' 라는 것이었다.
단순히 남편이 로봇 오타쿠라는 것만으로 흥미를 끈 것은 아니었다.
남편이 로봇 오타쿠인데도 내가 어떻게 그걸 긍적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지가
주변의 흥미를 끈 모양이었다.


내 남편은 로봇 오타쿠다.
'크레이지 장난감 오타쿠'라고 자칭하며 집에 있는 로봇 장난감의 숫자만 해도 100이나 200 정도는 가볍게 넘을지도 모른다.
자기 방 선반에는 각종 로봇들이 빽빽이 들어차 있고, 장식되지 못한 로봇들은 산업용 플라스틱 박스에 꽉꽉 담겨
옷장을 채우고도 공간이 모자랄 지경이라 방 한구석까지 차지하고 있다.

그런 크레이지한 장난감 오타쿠스러움에 인터뷰 기사까지 나갔을 정도였다.



그런 한편으로 나는 로봇에 전혀 흥미가 없다.
남편과 10년 넘게 같이 산 덕분에 트랜스포머, 미크로맨, 다이아클론 같은 단어는 알고있다.
하지만 어느게 콘보이고 어느게 메가트론인지 물어보면 구별이 안된다.
건담은 로봇이 아니라 모빌슈트라는 건 알고 있지만 건담 극장판을 본 건 레이와 시대가 되고나서 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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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아내와 건담 극장판 3부작을 봤는데
"샤아가 배신했어!?!?!?" , "도련님이니까라니, 멋져어어...", "건담 이거 생각한 거랑 전혀 달라! 토미노 요시유키 대단해!"
라는 명언을 연발해서, 레이와 시대에 처음으로 건담(토미노 작품)을 보는 사람의 순진무구함에 떨고 있다'

~~~

건담을 감상하는 모습은 남편이 트윗을 해버렸다.


남편과 몇 년을 살아도 나는 로봇에 관심이 없지만 장난감에 대한 지식은 꾸준히 늘었다.
예를 들어 보자면 장난감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에게는 알려져 있지 않은 일이라고 생각하지만,
기본적으로 장난감은 한번만 만들어지고 매진되면 절판된다.
복각하거나 재판매할지는 아무도 모른다.
그래서 이거다 싶은 장난감이 발매되었을 때 바로 작정하고 사지 않으면 손에 넣을 기회는 두 번 다시 없을지도 모른다.

한가지 사례로 2023년 4월에 다이아클론이라고 하는 어른용의 로봇 완구 시리즈 중에 '그랜드 다이온' 이라고 하는 상품이 발매되었는데
이건 쉽게 말해 45cm나 되는 거대한 로봇의 하반신이다.
가격은 63,800엔.
6만엔 이상 하는 로봇 하체.
이건 변형이 되는 장난감으로 전함으로 변신도 된다.
이것만으로도 놀라는 사람이 있을지 모르지만 문제는 거기가 아니다.
놀랍게도 이것이 발매된 시점에서 이 로봇의 상반신은 발표조차 되지 않았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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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도 하반신과 합체하게 될 상반신은 어떤 디자인이 될지 전혀 알 수 없다.
언제쯤 발매가 될지, 애초에 상반신이 제대로 발매가 될지도 확실하지 않다.
만약 출시된다면 대충 하반신과 비슷한 가격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
전체적으로 12만엔이 넘는 90cm짜리 로봇이 생길지도 모른다.
하반신이 별로 팔리지 않으면 상반신은 신기루가 되고 6만엔이 넘는 하반신만 남겨질지도 모른다.
이런 말도 안되는 상황에서도 로봇 오타쿠는 출시와 동시에 고가의 하반신를 살 수밖에 없다.
상반신이 발표될 때까지 기다리다간 하반신이 매진될지도 모르니까.
매진되면 다시는 못구할 지도 모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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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집에 있는 로봇의 하반신


그래서 우리 집에도 63,800엔짜리 하반신밖에 없는 로봇이 생겼다.
이런 얘기를 밖에서 하면 다들 기가 막혀한다.

'마, 마음이 넓구나' 라며 칭찬(?)받거나 '괜찮아?', '그래도 돼?' 라는 말을 듣기도 하고
더 심한 경우에는 '말도 안돼', '나라면 용서못해', '헤어질거야' 라고 대놓고 말하는 경우도 있다.

이건 즉, 로봇 장난감 따위에 그런 큰 돈을 들이는 것을 허락해도 되는지가 문제시되는 것이라고 여겨진다.

6만엔이 있으면 여러가지 일을 할 수 있다.
밥이라면 좋은 가게에서 풀코스를 먹을 수 있을 것이고, 1박 2일 정도면 여행을 갈 수 있고, 작은 액세서리도 살 수 있다.
그런 다른 선택지를 버리고, 남편의 취미인 로봇에 돈을 쓰는걸 허락해도 좋은가. 

다시 생각해봤지만, 역시 나는 '좋다'라고 밖에 생각할 수 없었다.
코스요리도 여행도 액세서리도 확실히 매력적이지만 '내가 스스로 6만엔을 내면서까지 하고 싶은가' 라고 물으면 딱히 그렇지도 않다.

만일 지금 '당신에게 6만엔 줄테니, 마음대로 쓰세요' 라고 누가 말해도 '이거다!' 싶은 건 딱히 떠오르지 않는다.

'누가 사주면 받아도 괜찮은 것' 같은 건 몇개인가 떠오르지만 머리 한구석에선 '그러면 금방 처치곤란이 될지도!' 라는 소리가 들린다.
'이거라면 써도 아무 후회도 없다!' 싶은 6만엔의 사용법이 생각나지 않는다.
'스스로 6만엔을 내서라도 어떻게든 이것을 갖고 싶다!' 라고 하는 것이 지금의 나에게는 없는 것이다.

그래서 남편이 로봇 하반신에 돈을 쓰는 걸 보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비싼 것을 사고 있는 것이 부러운 것은 아니다.
그렇게 좋아하는 것이 있고, 스스로 돈을 지불하고 손에 넣고 싶다고 믿어 의심치 않는 것이 매우 행복해 보이고 좋다고 생각한다.

내가 '어렴풋이 좋을지도' 라고 생각하는 코스 요리나 여행, 액세서리에 돈을 들이는 것보다
남편이 진심으로 갖고 싶어 죽겠다고 생각한 로봇 하반신을 사서 가지고 노는 것이 훨씬 더 풍요로운 일이다.
크레이지 장난감 오타쿠가 로봇의 하반신을 사는 것으로 밖에 얻을 수 없는 체험이 있다.
거기에 돈 쓰는 건 매우 좋다. 나도 그런 식으로 돈을 써보고 싶다.
나에게도 그만큼 좋아하는 것이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할 정도로 매우 올바른 돈의 사용법이다.

생각건대 '파트너의 취미를 허락할 수 없다'라고 하는 마음은  저 '부럽다' 라는 마음이 원인이 아닐까.
당연히 그러다가 생활까지 곤란해질 정도로 돈을 쏟아붓고 있다면 이야기는 다르지만,
돈이 부족하지 않은데도 '파트너의 취미를 인정할 수 없다', '왠지 용서할 수 없다' 라고 고민하는 사람의 진짜 고민은,
그런 식으로 자신의 마음에 따라서 살아 보고 싶은 것이 아닐까.

돈을 써야한다고 객관적으로 인정받을 수 있는가 아닌가, 일이나 다른 무언가에 도움이 되는지 아닌지는 아무 관계없다.

자신의 마음이 가는대로 정말로 좋다고 생각하는 것을 찾아서 자신이 좋아하는 것에 매진한다.

아무리 비싼 것이라 해도 자신이 그 가치를 인정하는 것이라면 자신을 가지고 돈을 쓸 수 있다.
그렇게 생각할 수 있는 것이 있다면 인생은 즐거울테고 자신의 마음에 정직하게 살아갈 수 있다는 느낌은 매우 기분이 좋을 것 같다.


그래서 그때 그룹 워크에서 질문받은
'어떻게 남편의 취미를 허락할 수 있나요?' 라는 질문에 답해보자면

'당신도 자신의 마음에 따라서 돈을 써 보는 것은 어떨까요' 가 될지도 모른다.

왜냐하면, 상대가 자신이 좋아하는 것에 몰두하고, 거기에 돈을 사용하고, 만족하고, 또 생활비가 부족해질 정도가 아니라면
아무런 문제도 없는 것이니까.

오히려 예산 안에서 상대는 행복하게 느낀다는 좋은 일 밖에 없다.

그것을 용서할 수 없다고 느낀다면 분명히 자신의 마음이 문제인 것이다.
어쩌면 자신에게도 상대만큼 즐거운 일이 자신의 인생에 일어나길 바라는 것일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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