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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이그.. | 20/01/18 01:30 | 추천 23 | 조회 1514

의사로 살면서 경험한 썰 #18 +373 [18]

보배드림 원문링크 https://m.bobaedream.co.kr/board/bbs_view/best/2775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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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이라는 년도가 아직도 낯설게 느껴지는 시기입니다.


늦게 돌아와 죄송합니다.


가능하다면 #19까지 쓰고 자러가도록 하겠습니다.


제 이야기를 담은 만큼 읽기전용으로 봐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불펌시 강력 대응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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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눈먼 점농어


의과대학 시절부터 낚시를 좋아했다. 아버지를 따라 어린시절부터 낚시를 한 덕분이었을까? 아버지는 더이상 하지 않으셨지만 나는 관성때문인지 계속 하게 되었다. 아버지는 섬으로 가서 실컷 낚시 할수 있으니 좋겠다며 말씀하셨고 나 또한 낚시라도 맘껏 해야겠다 생각했다. 섬으로 들어오는 첫 날 모든 낚시 장비를 챙겼다.

 

배가 안떠서 섬에 남게 되거나 일과를 마치고 종종 낚시를 했다. 해가 뉘엿뉘엿 지고 가로수 등불이 들어오면 조용한 선착장이 멋스럽게 변했다. 고요한 선착장에 주기적으로 들리는 새 지저귐소리. 멀리 있는 등대가 깜빡깜빡 거리는 목가적인 분위기는 한폭의 동양화 같았다. 낚시를 나갈때마다 매번 허탕을 쳤음에도 그 분위기의 일원이 되는게 좋았다.


2시간의 액션이 무색하게 입질이 전혀 없었다. 맞다 철이 아님이 분명했다. 철이 아니라 물고기가 없어서 못잡았던것이었다. 

완전히 해가 져버려 칠흑세상이 되어서야 나는 집으로 걸어 들어갔다.


전날 방문한 어부(환자)가 농어가 떼로 들어왔다며 포인트를 알려줬다. 농어는 멸치떼를 따라 몰려다니기 때문에 타이밍만 맞추면 마릿수 조과를 올릴수 있다. 나는 아침같이 포인트에 나갔다. 

섬에는 사람들이 많이 없다 보니 길이 없는 포인트가 많았다. 이곳이 정말 맞나? 하는 생각이 드는 순간 절벽이 나타났다. 아찔했다. 안전불감증이었다. 떨어졌다면 그대로 죽었을것이다.


놀란 마음을 진정시키고 다른 포인트로 이동했다. 오늘따라 파란 미노우가 눈에 들어왔다. 바로 달고 날렸다. (미노우; 가짜 피라미 미끼). 50M 앞에서부터 바닥을 긁으며 끌어 왔다. 바닥걸림인지 입질인지 모를 타닥거림이 나를 설레게 했다. 모든게 입질이라 생각하고 다시한번 던져본다. 바닥을 사정없이 긁고 드래그 하기 시작했다. 

세번 더 반복했을까.. 가만히 있어도 초릿대 끝이 미세하게 내려갔다. 입질이었다. 분명 미노우를 뱉어가며 간을 보고 있는게 분명했다. 미노우를 떨어뜨린다. 자연스러운 떨어짐에 물고기는 잽싸게 물었다. 한방에 물었다는건 광어 아니면 농어가 분명했다. 챔질도 필요 없을정도로 강하게 후킹 되어 끌려오고 있었다. 혹시나 빠질까 싶어 물 가까이로 이동햇다.


놈은 굉장히 셌다. 거의 다 끌려와 항복할만도 한데 마지막 순간 바늘 털이를 하고 있었다. 다행히 후킹이 제대로 되어 나의 승리로 끝났다. 50cm 정도 되는 점농어였다. 농어가 나오는 순간 나는 소리를 질렀다. 섬에서 첫 고기였다. 무수히 많은 날들을 소비했지만 물고기를 잡은건 이날이 처음이었다. 자랑스럽게 인증샷을 찍고 피를 뻈다.


집에 가져가 회를 먹을 생각에 설렜다. 드디어 섬에서도 자급자족을 할 수 있게 되었다. 치킨이 먹고 싶어도 팔지 않아 먹지 못했고 생선구이가 먹고 싶어도 팔지 않으니 먹을수 없었다. 나는 이제 회를 쳐먹고 남은 뼈로 매운탕을 먹을수 있었다.

이날은 주말이었고 섬에는 나밖에 없었다. 친하게 지내던 한의과 선생이랑 먹었다면 맥주도 마시고 좋았을테지만... 어쨌든 맛있게 먹기로 했다. 


주위 밭에서 무와 마늘을 가져와 매운탕을 만들고 서툴지만 과도로 회를 썰었다. 먹어본 가락 덕분인지 그럴듯하게 썰었다.
모든 음식을 준비하고 사진을 찍어 여자친구에게 보냈다. 조만간 들어오기로 한 그녀는 당장 와서 같이 먹고 싶다고 했다. 내가 내일 잡아줄테니 내일 들어오라고 했다. 농어는 미끼였다. 그녀를 위해서라면 농어 100마리라도 잡을 자신이 있었다.

그녀와 같이 요리하고 준비할 상상을 하며 혼자서 맛있게 먹었다. 농어철이라 그런지 맛이 좋았다. 혼자서 소주까지 따라 마셨다. 왠지 회에는 소주를 마셔줘야한다. 푸짐하게 차려진 한상은 웬만한 일식집 부럽지 않았다. 다만 미노우에 찔려 피가나는 손가락과 비린내 진동하는 온몸은 어쩔수 없었지만... 먹고 싶은 만큼 먹을수 있어 행복했다.

맛있는 음식을 먹으니 더더욱 그녀가 생각났다. 센치해지는 밤이었다. 한병의 소주가 만드는 센치함. 고요한 바닷가와 검은 하늘에 반짝거리는 등대의 불빛. 그녀와 나란히 앉아 바라보고 싶었다. 며칠만 더 자면 정말 그럴수 있다. 신났다. 섬에서의 생활이 당분간 즐거울 것 같았다. 나는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 잠들었다. 널브러진 칼과 매운탕 냄비가 널브러진 사이에서. 나는 교묘하게 누워 잘잤다. 귀찮았다. 그냥 자고 싶었다. 덕분에 다음날 아침에도 맛있는 매운탕을 먹을수 있었다.


나는 섬에서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잡은 물고기를 맛있게도 먹었다.







2. 그녀의 등장


그녀가 들어왔다. 그녀는 귀여운 진주빛 구두를 신고 시집오는 처녀처럼 왔다. 나는 진료중이라 항구까지 나갈수 없었고 그녀는 힘든 섬길을 구두로 또각또각 잘도 걸으며 진료소까지 왔다.

멀리서 캐리어 끄는 소리 점차 크게 들렸다. 그녀의 구두소리는 아주 경쾌했다. 그녀는 걷는것이 당당했고 그래서 구두소리도 경쾌했다. 그리고 그녀가 문을 열고 보건소로 들어왔다.

문앞으로 달려가 그녀를 안고 싶었지만 그 광경을 두명의 간호사와 한명의 환자가 보고 있었다. 캐리어를 들고 2층 방으로 향했다.

가운입고 있는 나의 모습은 그녀도 처음 보는것이었다. 캐리어를 내려놓자 장난기가 발동했다.


"환자분 어떻게 오셨나요?"

................응?ㅋㅋㅋㅋ

"아 많이 아프신가요? 일단 응급 치료를 위해 인공호흡을 하도록 하겠습니다" 하고 입술에 쪽 뽀뽀를 했다.

"선생님 치료 더해주세요 아직도 아픈거 같아요"

"주사가 필요할것 같아요. 침대로 누우세요"

"아잉 오빠 그만해 ㅎㅎㅎ"


유쾌했다. 지금 떠올려도 그 순간이 생각날정도로.... 그녀는 꼭 껴안는걸 좋아했다. 나는 그녀를 꼭 껴안아줬다.

방으로 전화벨이 울리기 시작했다. 아뿔싸 그제서야 기다리고 있는 환자가 생각났다. 나는 그녀에게 짐을 풀고 있으라하고 내려왔다. 

그녀가 도착하고 나서도 환자 행렬은 끊이지 않았다. 섬은 바닷바람때문인지 여름에도 감기환자가 많았다. 맑은 콧물을 흘리는 환자들이 유독 많았는데 아마도 epidemic하게 바이러스가 계속 도는게 아닐까 생각했다.

마스크를 해야겠다 생각하는 순간은 이미 늦었다. 환자와 애기를 해야하는데 계속 마스크를 할순 없었다. 마스크를 하면 환자를 병자 취급하는것 같아 웬만하면 하고싶지 않기도 했다. 그러다 나도 섬사람들의 감기에 걸려 며칠을 고생하곤 했다.


감기환자들에게 약을 처방하고 5시쯤이 되자 여유를 찾았다. 방으로 올라갔다. 그녀는 평소에도 굉장히 깔끔했다. 그녀의 방에 처음 갔을때에도 짐이 많았지만 어질러져있다는 느낌이 들지 않았다. 그녀는 내가 진료보는동안 어질러진 내 방을 정리해놓았다. 사실 인생 최선을 다하여 방을 깨끗이 청소한건 안비밀이다. 그녀에게 부끄럽지 않으려고 청소를 했는데 그녀는 마음에 안들었는지 아니면 청소를 안했다고 생각했는지 청소기로 청소까지 해놓고 물건 정리정돈을 마쳐놓았다. 

그녀는 청소하다 지쳤는지 새근새근 잠자고 있었다. 이것이 결혼의 행복일까 란 생각이 들었다. 일을 마치고 돌아왔을때 사랑하는 아내가 집에서 기다리고 있는 모습. 너무 행복할것 같았다. 그녀는 너무 예뻤다. 혼신의 힘을 다하려 했는지 머리를 뒤로 묶어 옆머리가 예쁘게 내려와 있었다. 한동안 바라보며 가슴 떨리는 상상을 했다. 


반대편 신발장에는 그녀의 진주색 구두가 놓여 있었다. 나만의 방에 그녀의 신발이 놓이는 순간 남모르게 설렜다. 내 마음속에 그녀를 들여다 놓은듯한 느낌이었다. 나는 그녀의 구두 옆에 내 구두를 가져다 놓았다. 그렇게 놓여있는 모습이 더 예뻤다.

설레는 장난을 하다가 그녀가 깼다. 

그녀는 진료가 끝났냐고 물었고 아직 끝나지 않았다고 하자 조금만 더 힘내라고 말했다. 그녀는 항상 내 입장에서 말을 해주었다. 배고플만도 한데 본인이 배고프다고 했으면 당장이라도 요리를 해줬을텐데 내 진료시간을 걱정해주고 있었다. 나는 그녀의 마음을 당연히 알고 있었고 사랑스럽게 그녀를 안아줬다.


파스타. 파스타는 내 섬생활의 위로였다. 왠지 파스타를 해먹으면 마음이 위로 되는것 같았다. 육지를 들어갈때마다 나는 한통씩 파스타 소스를 사서 들어갔다. 냉동 새우와 면만 삶으면 그럴듯한 파스타가 완성 되었다.

오늘은 그녀에게 토마토 파스타를 해주기로 했다. 도와주겠다는걸 만류하고 누워있으라고 했다. 사실 너무 간단해서 들키고 싶지 않았다. 면을 삶고 소스와 올리브유 그리고 새우를 넣고 살짝 볶아주면 끝났다.


"섬에 재료가 없어서 맛이 평범할거야"

"괜찮아 오빠가 해주는 첫 요리잖아 맛있게 먹을거야"


그녀는 어쩜 말도 예쁘게 한다. 호로록 파스타가 넘어 가는 소리가 난다. 사실 토마토 소스가 맛이 없을수가 없다. 요리를 못하는 나지만 무엇이 평타를 치는지는 알고 있었다. 그녀는 연신 맛있게 먹었다. 그녀와 나란히 앉아 먹으니 나도 맛있었다.

그녀가 섬에 온 이상 일을 시키고 싶지 않았다. 섬에 와준것만 해도 얼마나 큰 일인지 알고 있었다. 설거지를 하겠다는걸 또 막고 쉬고 있으라고 했다. 아마 그녀의 엉덩이가 짓무러졌을지도 모른다 하하


그녀가 온날은 다행히 응급환자도 없었다. 오랜만에 저녁시간을 조용히 그녀와 보낼수 있었다. 침대에 나란히 반쯤 누워 같이 영화를 봤다. 서로의 온기가 이불사이로 오고 갔다. 나는 매일 새벽마다 차가운 바닷바람에 덜덜 떨곤 했다. 그녀하나 왔을뿐인데 침대속이 따뜻해졌다. 아마도 그녀가 바람막이를 해줬던게 분명하다.


그녀의 손을 꼬옥 잡고 잠들었다. 그녀의 향기는 좋았다. 그 향기에 취했는지 나도 모르게 잠들었다. 그녀도 섬까지 오느라 수고가 많았다. 우리는 오랜만에 서로의 온기를 교환하며 따뜻하게 잠들었다. 


참으로 아름다운 한 여름밤의 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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